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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

외식 메뉴 전쟁: 한식파 아들과 양식파 딸의 끝없는 갈등

외식 메뉴 전쟁: 한식파 아들과 양식파 딸의 끝없는 갈등

우리 가족에게는 매번 반복되는 난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외식 메뉴 선택이다. 외식이란 원래 즐거운 시간이어야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메뉴 선정부터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들은 한식을, 딸은 양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맛있고 분위기 좋은 곳이면 어디든 좋다. 그러나 우리 가족 외식의 최우선 목표는 아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아이가 극과 극이라는 것이다.


외식할 때마다 벌어지는 한식 vs. 양식 대결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이 한 마디를 꺼내는 순간, 두 아이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엄마, 삼겹살 먹으러 가요!"
"아니야, 파스타 먹고 싶어!"

아들은 늘 고기와 찌개를 찾는다. 삼겹살, 갈비, 된장찌개, 순댓국 같은 한식 메뉴를 사랑한다. 반면, 딸은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 같은 서양 음식을 선호한다.

"삼겹살은 집에서도 먹을 수 있잖아. 우리 파스타 먹으러 가자."
"아니야! 파스타는 배가 안 차! 난 국물이 있어야 해!"

딸은 가볍고 세련된 음식을 원하고, 아들은 든든한 밥과 국이 필요하다. 이렇게 매번 외식 메뉴를 정하는 과정에서 신경전이 벌어진다. 남편과 나는 그저 둘 사이에서 중재자로 서 있을 뿐이다.


중립지대를 찾아라!

처음에는 고민 끝에 한식과 양식이 모두 있는 뷔페를 선택했다. 그러나 문제는 뷔페를 너무 자주 가다 보니 질려버렸다는 것.

그래서 다른 대안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1. 퓨전 음식점 탐방
    한식과 양식을 절묘하게 섞은 퓨전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가령, 불고기 피자, 갈비 파스타 같은 메뉴가 있는 곳을 가면 두 아이가 조금씩 만족할 수 있었다.
  2. 번갈아가며 선택하기
    한 번은 아들이 원하는 한식당, 다음 번에는 딸이 원하는 양식당을 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법의 단점은 상대방이 불만을 품는다는 것이다. "왜 오빠가 먹고 싶은 거 먹어야 해?" 또는 "왜 오늘도 파스타야?" 같은 불평이 이어졌다.
  3. 두 메뉴가 있는 식당 찾기
    요즘은 한식당에서도 돈가스나 파스타를 팔고, 양식당에서도 김치볶음밥 같은 메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메뉴가 다양한 식당을 가면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식당도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가장 극적인 순간: 배고픔이 극에 달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어느 날, 외출 후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두 아이가 한식과 양식을 두고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다.

"그러면 각자 먹고 싶은 거 먹자!"
아내와 나는 이렇게 선언했고, 결국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배달로 음식을 시켰다.

아들은 국밥을 주문했고, 딸은 크림파스타를 선택했다. 두 아이가 각자 만족하며 식사를 하자, 남편과 나는 그제야 평화롭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한식을 먹던 아들이 갑자기 딸의 파스타를 보더니,
"한 입만 먹어볼까?"
라고 말했다.

그러자 딸도 "동생꺼 맛있어 보이는데?" 하면서 국밥 한 숟가락을 떠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굳이 하나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


외식의 새로운 공식

그날 이후로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1. 각자 다른 메뉴를 시켜서 나눠 먹기
    한식집에서도 양식 메뉴가 있다면 하나씩 시켜서 함께 나눠 먹는다. 마찬가지로 양식당에서도 한식 요소가 포함된 메뉴를 주문해 본다.
  2. 새로운 음식 도전하기
    아들이 좋아하는 메뉴에서 한식 스타일의 양식(불고기 파스타 등)을 찾아보고, 딸이 좋아하는 메뉴에서 한식 요소가 들어간 것을 찾아보는 것이다.
  3. 아이들에게 직접 선택권을 주되, 절충점을 찾도록 유도하기
    "이번엔 동생이 한식 고르면, 누나도 같이 맛보기. 다음엔 누나가 고른 양식에서 동생도 한 입씩 먹기." 이렇게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맛을 경험하게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외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메뉴 선택으로 다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물론 여전히 한식과 양식의 전쟁이 가끔 벌어지긴 하지만,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생겼다.

나는 외식이 단순한 '먹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 간의 소통과 배려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도 각자의 취향이 있지만, 가끔은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며 맛의 다양성을 알아가고 있다.

이제 다음 외식 메뉴를 정할 때는 "한식 vs. 양식"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오늘은 뭘 같이 나눠 먹을까?"**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한 번씩은 고민이 되겠지만 말이다.